전 세계 교역량의 90% 이상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해상 운송은 글로벌 무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무려 99.7%를 선박을 통해 운송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해상 운송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하는 주요 탄소 배출원이기도 합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면서, 해운업계는 지금 친환경 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과연 바다 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대안 에너지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왜 해상 운송의 탄소 배출 저감이 중요한가?
2023년 국제해사기구(IMO)는 2008년 기준 총배출량 대비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박 보유 기준 세계 8위로, 지난 10년 만에 선박 배출량이 약 15%(2012년 2,432만tCO₂ → 2022년 2,873만 tCO₂) 증가했습니다. 해운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탄소 배출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선박은 ‘중유’ 또는 ‘벙커C유’라 불리는 연료를 사용해 왔는데, 이 연료는 연소 시 황산화물(SOx)을 다량 배출하며 대기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IMO는 2020년부터 황 함유량을 3.5%에서 0.5%까지 대폭 낮춘 연료 사용을 의무화했으나, 이것만으로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불가능합니다. 이에 해운업계는 다양한 대안 에너지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해상 운송을 위한 주요 대안 에너지원
1. LNG(액화천연가스) – 징검다리 연료
LNG는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대안 연료로, 기존 벙커C유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20%, 황산화물은 거의 100%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LNG도 여전히 화석연료의 일종으로 완전한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LNG를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무탄소 연료로 가는 징검다리”로 평가하고 있죠.
LNG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엔진을 교체하거나 선박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다소 부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해운사들은 LNG 추진 선박 발주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2. 바이오연료 – 현실적인 단기 대안
바이오연료는 선박 엔진을 개조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바이오선박유(Bio Marine Fuel)는 일반 선박유 70%에 바이오디젤 30%를 혼합한 ‘B30’이 대표적인데, 기존 화석연료 대비 약 24%의 탄소배출 감축 효과가 있습니다.
바이오연료의 원료는 주로 폐식용유 등의 바이오매스(Bio Mass)로,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바이오연료에 대한 국제 친환경 제품 인증 ‘ISCC EU’를 취득했습니다. 2023년 7월 IMO는 “기존 화석연료 대비 탄소 배출 감축량이 65% 이상 절감된 바이오연료를 사용한 선박유”를 바이오선박유로 공식 인정했으며, 이는 바이오연료 사용 확대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바이오연료는 메탄올이나 암모니아와 같은 다른 대안 연료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새로운 선박 제조나 엔진 개조 없이 사용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탄소 감축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3. 암모니아 – 2050년 해운 에너지의 주역
암모니아는 질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합물로, 연소 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아 무탄소 연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해운사업 에너지 소비의 약 46%를 암모니아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대기압 기준 -33℃에서 액화되기 때문에 저온 저장이 필요하지만, 수소보다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암모니아는 독성이 있어 안전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러한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 초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설계에 대한 기본인증을 획득했으며, HD한국조선해양은 암모니아 연료의 독성가스 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줄이는 일체형 암모니아 스크러버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암모니아 연료전지는 고온 촉매 반응을 통해 암모니아를 수소와 질소로 분리하고, 이를 연료전지에 공급해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합니다. 이 방식은 추진용 메인 엔진과 전력용 발전 엔진 모두를 대체할 수 있어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이산화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3무 친환경 선박’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4. 수소 – 이상적인 무탄소 에너지원
수소는 가장 이상적인 대체 연료로 거론됩니다. 연소 시 탄소가 전혀 발생하지 않으며, 암모니아나 LNG 등 다양한 연료들과 혼소가 가능한 장점이 있습니다. 선박에 설치된 연료전지에 수소와 산소를 공급하면 화학반응을 통해 물과 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해 선박 동력으로 활용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은 항공용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해양 환경에 적합한 고효율·고내구성 수소연료전지를 공동 개발 중입니다.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장거리 운항에 적합하지만, 저장과 운송에 어려움이 있어 액화수소 기술 개발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 해상 운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국제 수소 거래의 중요한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에너지 9,000 GJ(기가줄)에 해당하는 총 75톤의 액화 수소를 운반할 수 있는 용량으로, 배에 선적된 액화수소는 갈탄에서 추출한 수소를 섭씨 -253도에서 액화시킨 것입니다.
5. 전기 추진 시스템 – 단거리 운항의 친환경 대안
전기자동차와 유사하게, 전기 배터리와 전기 모터를 사용해 선박을 운행하는 전기추진선도 대안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에는 약 1,006척의 전기추진선이 운항 중이며, 1년 새 60.5%(379척) 증가하는 급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전기추진 시스템은 발전원에 따라 여러 방식이 있는데, 주로 발전기엔진(디젤, LNG/LPG, 메탄올, 암모니아 등), 연료전지시스템, 배터리시스템 등으로 구성됩니다. 배터리 종류는 납 축전지, 니켈 카드뮴(Ni-Cd)전지, 니켈 수소(Ni-HM)전지, 리튬이온 배터리 등이 사용됩니다.
다만 전기추진선은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항해 지속능력이 아직 약해 주로 단거리 항행에 적합하며, 장거리 항행 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친환경 선박 산업 확대를 위해 전기추진선박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6. 풍력 추진 시스템 – 자연의 힘을 활용한 보조 동력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선박 동력원인 바람을 활용하는 풍력 추진 시스템도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특히 로터세일(Rotor Sail)은 항해 중 발생하는 풍력으로 회전하며, 원통 주변부에서 발생하는 압력 차를 이용해 선박에 추진력을 더하는 기술입니다.
윈드윙(Wind Wing)이라 불리는 이 기술을 보조 동력원으로 이용하면 선박의 탄소배출량을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고, 대체연료와 함께 사용하면 이 수치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50척 이상의 선박이 풍력추진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으며, 영국 해운업체 터프톤(Tufton)은 자사 보유 벌커에 로터세일을 탑재해 연료 소모를 10% 줄인 사례도 있습니다.
해상 운송 탄소중립을 위한 한국의 전략
해양수산부는 2023년 2월에 ‘국제해운 탈탄소화 추진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 전략은 2030년까지 60%, 2040년까지 80%, 2050년 100%를 감축하겠다는 넷제로 목표를 담고 있으며, 크게 네 가지 핵심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친환경 선대 전환: 국적 선사 보유 선박을 저탄소·무탄소 친환경 연료 선박으로 전환
- 항만 인프라 구축: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인프라 조성
- 국제 협력 강화: 글로벌 친환경 해운 네트워크 구축
- 녹색 해운 항로 구축: 무탄소 연료 또는 친환경 기술을 활용한 해상운송 전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항로 개발
특히 한국의 조선·해운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삼성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등 주요 조선사들은 이미 암모니아, 수소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를 활용한 선박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
해상 운송의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안 에너지원 개발과 도입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 인프라 구축: 새로운 대체 연료를 위한 공급 인프라 구축이 시급합니다. 특히 수소, 암모니아 등의 연료는 저장과 운송 인프라가 필수적입니다.
- 비용 효율성: 대부분의 대체 에너지원은 아직 기존 화석연료보다 비용이 높습니다. 경제성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과 규모의 경제 달성이 필요합니다.
- 안전성 확보: 특히 암모니아와 같은 독성 물질은 안전한 취급 기술과 규제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 글로벌 표준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술 표준과 규제 프레임워크가 필요합니다.
세계 바이오연료 시장의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1,514억 4,000만 달러에 달했으며, 2050년까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해운 부문에서는 친환경 연료의 수요가 최대 4.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선박 연료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만큼 수소, 암모니아 등 차세대 연료에 대한 R&D 환경과 인프라 확충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현재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 선박 연료는 무엇인가요?
A: 단기적으로는 바이오선박유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기존 엔진을 개조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어 도입 장벽이 낮고, 탄소 배출 저감 효과도 상당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LNG를 거쳐 암모니아와 수소가 주요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Q: 전기추진 선박의 한계점은 무엇인가요?
A: 전기추진 선박은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장거리 항해 능력이 약하고, 충전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이 주요 한계입니다. 또한 대형 선박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배터리 용량과 무게 문제가 있어, 주로 단거리 페리나 소형 선박에 적합합니다.
Q: 암모니아와 수소 중 어떤 연료가 더 유망한가요?
A: 두 연료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완전한 무공해 연료이지만, 저장과 운송이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암모니아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고 기존 인프라를 일부 활용할 수 있지만, 독성 관리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50년 해운 에너지의 46%를 암모니아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암모니아가 더 유망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Q: IMO의 탄소중립 목표는 달성 가능할까요?
A: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기술 개발과 정책 지원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 대안 에너지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각 선박의 운항 특성에 맞는 최적의 솔루션을 적용한다면 단계적인 탄소 감축이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글로벌 협력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결론: 바다 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하여
해상 운송의 탄소 배출량 저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바이오연료, 암모니아, 수소, 전기, 풍력 등 다양한 대안 에너지원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미 일부는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인 조선 및 해운 강국으로서, 이러한 친환경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과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 위의 녹색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혁명을 더욱 가속화하고, 지속가능한 해상 운송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