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물량의 99.7%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 해운산업의 핵심, 선원들의 삶은 어떨까요? 파도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근무하는 선원들이 겪는 현실과 개선이 필요한 노동환경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고립된 섬: 선원 노동환경의 실상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 위 선박에서는 수많은 선원들이 고된 노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계해사대학(WMU)의 보고서에 따르면 선원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무려 74.9시간에 달합니다. 이는 전세계 노동자 근무 평균인 43시간과 비교해 엄청난 차이를 보이죠.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선원들의 78.3%가 전체 계약 기간 동안 온전한 하루의 휴가도 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선박에서는 일정한 작업시간과 휴식시간, 취침시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식사 시간마저 작업 틈틈이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모두 노동 시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루 15-20시간까지도 노동을 하고, 기상 악화로 선박을 운행할 수 없는 날이 유일한 휴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육상의 노동환경과는 확연히 다른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하지만, 선원들은 사회적 관심과 지원에서 늘 소외되어 왔습니다. 가족과 장기간 격리된 채 거친 바다 현장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고충은 쉽게 잊히곤 합니다.
위험에 노출된 해양 노동자들의 현실
선원들은 육상 노동자와 달리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해상에서 이뤄지는 작업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의료 지원을 받기 어렵죠. 최근 6년간 항만하역 노동 재해자는 1,578명이었으며, 이 중 사망자는 39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산업재해와 사고재해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늘어나는 주된 원인은 미흡한 안전점검과 안전교육 부재에 있습니다. 컨트롤타워 부재도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현장에서 장비 정비에 따른 안전사항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거나, 무거운 장비를 다루는 작업 반경 주위가 통제되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가 많습니다.
또한 글로벌 해양노동조합 노틸러스 인터내셔널(Nautilus International)의 조사에 따르면 해상 근로자의 42%가 해상에서 괴롭힘 또는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보고서는 전체 선원의 8~25%가 괴롭힘을 경험했으며, 그중 여성 선원이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심각한 선원 인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은 선원 인력 부족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가 발표한 ‘2024 한국선원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선원수는 3만587명으로, 2016년 대비 14.3%가 감소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체 선원 중 60세 이상인 선원이 43.4%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2년에는 국적 선원, 특히 선장·기관장이 부족해지면서 국내 외항 상선의 절반 이상이 원활한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국적 선원은 국가 경제안보를 지키는 핵심 공공인력으로, 적정 규모의 국적 선원을 유지하는 것은 해운산업 경쟁력과 경제안보 차원에서 국가 필수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가 직면한 차별과 인권 문제
한국인 선원들의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면, 외국인 선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충격적이게도 선원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거나 한국인 선원과 다른 차등적인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습니다.
선원의 최저임금은 ‘해상의 열악한 작업 여건’을 고려해 육상 노동자의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지만, 해양수산부 선원 최저임금 고시 특례 조항에 따라 외국인 선원의 경우 선원 노동 단체와 선박 소유자 단체의 단체 협약으로 별도로 정해져 왔습니다. ‘해상의 열악한 작업 조건’이 국적을 가릴 리 없고, 선원법이 준용하는 근로기준법은 국적을 이유로 근로 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차별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여러 차례 권고 끝에 해양수산부는 선원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2023년 85%, 2024년 90%, 2025년 95%, 2026년에 100%로 한국인 선원과 동일하게 맞추기로 했습니다.
또한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육상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도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는 고용허가제의 독소 조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인 선주의 동의는 물론이고 송입 업체의 새로운 선박 소개도 필요합니다. 이로 인해 강제노동의 위험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해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다행히 최근 들어 선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선원 정책의 효율적·체계적 추진을 위한 ‘제2차 선원정책 기본계획(’24~’28)’을 수립하여 ▲안정적 선원 수급 기반 마련, ▲일하고 싶은 선내 근로환경 조성, ▲글로벌 미래 선원 육성 등의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한국해운협회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은 ‘국제선박 한국인 선원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선원의 유급휴가 일수 확대와 점진적인 정년 연장, 직무상 상병보상·유족보상, 유족 특별위로금을 상향조정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선원의 유급휴가 청구권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했고, 유급휴가 일수를 1개월 승선근무 시 기존 8일에서 최저 10일 이상으로 확대했습니다.
또한 해양수산부는 선원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선내 초고속 인터넷 도입 지원, 선원 민원 행정서비스 디지털화 등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선원이 안심하고 승선할 수 있는 선내 근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근로기준 보장과 인권침해 예방에 힘쓰고, 선원 안전·보건 관련 법령을 마련하는 중입니다.
미래 선원 확보를 위한 추가 개선 방안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선원의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합니다.
1. 통합적인 선원 복지 시스템 구축
선원들의 복지를 총괄하는 통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한국해상근로복지공단 설립을 통해 선원들의 복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원은 수출입 물동량 운송 및 바다식량 확보 등 국가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합니다.
2. 선원 직업의 매력도 제고
젊은 세대가 선원 직업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처우 개선과 직업 전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특히 해상-육상 근무를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는 ‘해양교통 전문가’ 경력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선원들이 장기적인 커리어 패스를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3.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근무환경 개선
선내 초고속 인터넷 도입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선원들의 연결성을 높이고 고립감을 줄여야 합니다. 가족 및 사회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고 근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4. 선원 교육 및 양성 시스템 강화
친환경·최첨단 선박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과 실습 인프라 강화를 통해 역량 있는 선원을 양성해야 합니다. 특히 해양대학교 확충과 같은 고등교육 기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인천지역에는 인천해양과학고등학교와 인천해사고등학교 등이 있지만, 보다 수준 높은 교육과 전문적인 선원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교 수준의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5.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 강화
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송출비용 문제 해결,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임금 차별 철폐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바다 위의 SOS, 우리 사회의 응답은?
노동절의 역사는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규탄하는 총파업으로 시작되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바다 위에서 일하는 선원들은 여전히 하루 15-20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뒷받침하고 수출입 화물의 99.7%를 담당하는 해운·항만산업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족들은 오늘도 가장이 무사히 퇴근하기만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출근하는 아들의 모습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노동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해양·항만 노동자들의 ‘Mayday(선박·항공기의 국제 조난 신호)’에 우리 사회는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선원들의 노동권과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해양강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선원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A: 세계해사대학(WMU)의 보고서에 따르면 선원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4.9시간으로, 전세계 노동자 근무 평균인 43시간보다 훨씬 깁니다. 특히 하루 15-20시간까지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상 악화로 선박을 운행할 수 없는 날이 유일한 휴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Q: 한국 선원의 수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요?
A: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의 ‘2024 한국선원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선원수는 3만587명으로, 2016년 대비 14.3%가 감소했습니다. 또한 전체 선원 중 60세 이상인 선원이 43.4%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Q: 선원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선원 간의 임금 차이는 어떤가요?
A: 선원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에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다행히 해양수산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선원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2023년 85%, 2024년 90%, 2025년 95%, 2026년에 100%로 한국인 선원과 동일하게 맞추기로 했습니다.
Q: 선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A: 해양수산부는 ‘제2차 선원정책 기본계획(’24~’28)’을 수립했으며, 한국해운협회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은 ‘국제선박 한국인 선원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유급휴가 확대, 정년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선내 초고속 인터넷 도입 지원, 선원 민원 행정서비스 디지털화 등의 정책도 진행 중입니다.
Q: 선원 직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A: 장기간 가족 및 사회와 격리되는 고립감, 극심한 노동 강도, 제한된 휴식과 여가, 안전사고 위험 등이 선원 직업의 주요 어려움입니다. 또한 디지털 연결성 부족으로 인한 정보 접근의 제한과 심리적 스트레스도 큰 문제로 꼽힙니다.
선원들은 우리 경제의 대들보이자 바다의 수호자입니다.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바다 위의 그들에게 보내는 우리의 작은 관심이 그들의 삶과 우리의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