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바다의 유산: 전통 목선 제작 기술의 보존과 문화적 가치

“목선을 만들다 죽는 게 유일한 소망입니다.” 울산 동구에서 3대째 목선 제작 기술을 이어온 오재현 장인의 말입니다. 그의 한 마디에는 우리의 전통 목선 문화가 직면한 현실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때 우리 바다를 누비던 목선들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우리 해양문화의 정체성과 지혜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오늘은 사라져가는 전통 목선 제작 기술의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천 년의 역사를 품은 우리의 전통 목선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 덕분에 선사시대부터 목선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배 위에서 작살과 낚싯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이는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바다와 함께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전통 배인 ‘한선(韓船)’은 통나무를 파내거나 나무판을 연결하여 만든 배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더욱 발전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조운선, 과선, 누전선 등 다양한 목선이 제작되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판옥선과 거북선이 크게 활약했죠.

한선의 가장 큰 특징은 강도 높은 나무를 사용해 외부 충격이나 거센 폭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입니다. 또한 지역별 해양환경과 용도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가령 남해안의 멸치잡이 배는 동해안의 어로선과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끝에서 탄생하는 장인의 예술, 목선 제작 기술

전통 목선 제작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예술에 가깝습니다. 장인들은 도면 없이 오로지 경험과 눈대중만으로 배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었고, 지역별로 독특한 제작법이 발전했습니다.

목선 제작의 첫 단계는 좋은 목재 선택부터 시작합니다. 배 만드는 원목은 주로 삼나무를 사용했는데, 나무를 3개월 정도 햇빛에 충분히 말린 후에야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배가 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목선 제작 방식은 크게 카벨 이음과 클링커 이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카벨 이음은 판재의 모서리를 맞대어 붙이는 방식이고, 클링커 이음은 판재를 서로 겹쳐 붙이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이음새 사이로 물이 새지 않도록 삼나무 껍질을 틈새에 채워 넣었습니다.

배 만들기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은 배 앞부분인 선수부를 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목재에 물을 주고 열을 가하는 과정을 통해 2~3일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목선 제작은 정교함과 인내, 그리고 수십 년 경험에서 나오는 장인의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무너져가는 전통 목선의 현주소

한때 어촌 마을에서 1등 직업으로 꼽히던 배 목수(배 만드는 장인)의 위상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연안에는 크고 작은 목선 제작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남아있는 몇몇 장인들도 주문이 없어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른 가장 큰 이유는 FRP(Fiber Reinforced Plastics, 강화플라스틱) 선박의 등장입니다. FRP 선박은 목선에 비해 관리가 용이하고 제작 비용도 저렴해 어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결과 전통 목선의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고, 마지막 명맥을 이어오던 목선 공장들도 하나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북구 당사항에서 목선을 만들던 최무홍 장인은 “연장이 녹슬지 않도록 기름칠하고 신문지에 싸서 보관하고 있다”며 “주문만 들어오면 지금 바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새 배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은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울산시의 경우 동구 주전, 방어진, 울주군 온산 등 세 곳에 있던 목선 제작소가 모두 문을 닫았고, 장인들은 농사일이나 FRP 선박 수리 등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라남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소중한 해양문화유산인 목선 제작 기술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바다 위 문화유산, 목선의 가치

목선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문화유산으로서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목선은 우리 조상들이 바다와 함께 살아온 역사와 지혜의 산물입니다. 해안과 섬 지역마다 독특한 형태와 제작 방식을 가진 목선들은 그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습니다.

구룡포의 포구에서 60여 년 평생을 바쳐 한국 전통 범선을 만들어 온 김창명 장인은 “목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조업과 기원의 방식은 서해, 남해와 비슷하게 보이나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특히 진수식이나 배고사 등 정신문화 면에서는 지역민의 성정이 더욱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또한 목선은 환경적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FRP 선박은 폐기 시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키지만, 목선은 자연분해가 가능해 친환경적입니다. 이처럼 목선 제작 기술은 우리의 해양 문화유산이자 생태적 지혜가 담긴 소중한 자산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전통 목선의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 노력이 활발합니다. 인도네시아의 피니시(Pinisi) 선박 제작 기술은 2017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피니시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인도네시아의 전통 목선으로, 외형만 봐도 다른 전통 선박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선 제작 기술,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목선 제작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첫째, 무형문화재 지정을 통한 제도적 보호가 필요합니다. 목선기술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보유자에게 생계비와 전승지원금 등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조선장(배 만드는 장인)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지만, 아직 많은 지역에서는 관심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울산시의 경우 “시장은 시지정문화재 등의 보존·관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문화재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있는 자나 연구기관에 시지정문화재 등의 기록을 작성하게 할 수 있다”는 조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틀을 활용해 목선 제작 기술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목선 제작 기술의 체계적인 기록과 아카이빙이 중요합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미 우리나라의 전통조선기술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중발굴된 고선박 복원과 전통조선항해기술사전 발간 등의 사업은 좋은 예입니다.

셋째,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 활동을 통한 대중적 관심 확대가 필요합니다.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는 야외 전시장에 다양한 전통 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시와 함께 목선 제작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목선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넷째, 전통 목선의 현대적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관광자원으로서 전통 목선을 활용하거나, 현대적 요트 디자인에 전통 목선의 요소를 접목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피니시 구조를 기반으로 한 럭셔리 요트들이 제작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발전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바다의 기억을 지키는 일

목선은 단순한 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역사와 지혜,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이 담긴 소중한 유산입니다. “과거를 물고 있지 않은 현재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전통 목선 제작 기술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해양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자, 미래 세대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목선을 짓고 수리하는 마지막 장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배는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우리 해양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들의 기술과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나 지역 항구를 방문해 전통 목선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해양 문화유산인 목선 제작 기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세요. 우리 모두의 작은 관심이 모여 바다 위 문화유산을 지키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한국의 전통 목선은 어떤 종류가 있나요?

한국의 전통 목선으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조운선(세곡을 운반하던 배), 판옥선(전투용 군함), 거북선(임진왜란 때 활약한 전투함), 그리고 지역별로 다양한 어선이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가거도 멸치잡이배, 남해안의 돛단배, 서해안의 주낙배 등 다양한 형태의 목선이 발달했습니다.

전통 목선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나요?

전통 목선 제작은 먼저 좋은 목재(주로 삼나무)를 선택하여 3개월 정도 햇빛에 말린 후 시작됩니다. 배 밑바닥인 접한(저판)을 먼저 깔고, 앞부분(이물비우)과 뒷부분(공을비우)을 연결합니다. 이때 나무못을 사용하여 연결하고, 틈새는 삼나무 껍질로 메워 방수처리를 했습니다. 특히 선수부(앞부분)를 휘게 만드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으며, 이 과정에서 물을 부어가며 열을 가해 나무를 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선 장인은 몇 명인가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적습니다. 울산의 경우 최무홍, 오재현 등 몇 명의 장인이 남아있고, 전라남도에서는 조일옥 조선장 등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령이며, 목선 수요가 없어 실제로 배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목선 제작 기술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례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경기도는 ‘조선장(造船匠)’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했고, 부산시는 ‘하단돛배 조선장’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했습니다. 전라남도에서는 ‘조선장’이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는 없으며, 많은 지역에서 목선 제작 기술에 대한 관심과 보호 노력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FRP 선박과 비교했을 때 목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목선은 FRP 선박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목선은 수명이 다하면 자연분해가 가능하지만, FRP 선박은 폐기물 처리가 어렵고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목선은 파도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특성이 있어 특정 해양환경에서는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목선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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