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항해하던 선박이 더 이상 선원의 손길 없이도 스스로 운항할 수 있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자동차 업계의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로 육상 이동 수단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면, 해양 분야에서는 자율운항 선박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첨단 센서 기술의 발전으로 선박이 스스로 항로를 결정하고 장애물을 회피하는 ‘자율운항선박(MASS: 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해운·조선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자율운항 선박 기술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자율운항선박, 그것이 알고 싶다
자율운항선박이란 무엇일까요?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선박을 “사람의 개입이 없거나 최소화하여 운항하는 선박”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선박 스스로가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제어하여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운항할 수 있는 기술을 탑재한 선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선원의 인적 오류를 줄이고, 연료 효율을 높이며, 해양 안전을 강화하는 획기적인 솔루션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국내 해양사고 발생건수는 2015년 2,101건에서 2020년 3,156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해양사고의 82%가 인적 과실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이러한 인적 오류를 획기적으로 줄여 해양사고를 감소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의 기술 단계와 핵심 요소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선박을 기술 수준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 Level 1: 선원이 승선하며 의사결정을 돕는 지원 시스템이 있는 단계
- Level 2: 선원이 승선하지만 원격으로 제어 가능하며, 비상 상황 시 선원이 수동 개입할 수 있는 단계
- Level 3: 선원 없이 원격으로 제어하며 장애물 예측 및 진단이 자동화된 단계
- Level 4: 완전 자율적으로 운항하는 무인 완전 자율운항 단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단기간 내에 완전 자율운항선박(Level 4)을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의 기술 발전은 자율화 및 지능화 기술 수준에 따라 결정되며, 그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율운항선박의 핵심 기술
- 상황인식 기술: 레이더, 라이다, 카메라 등 다양한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장애물을 탐지하는 기술
- 항로 의사결정 및 제어 기술: 해상 환경, 항구 정보, 선박 정보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항로를 결정하는 AI 기반 기술
- 엔진 자동화 및 에너지 관리 기술: 선원 없이도 선박 장비를 제어하고 고장 발생 시 원격으로 복구 가능한 기술
- 선내 데이터 네트워크 기술: 선박 내 생성되는 정보를 수집·저장·분석·전달하는 데이터 통합 관리 기술
- 육상대응 시스템: 자율운항선박의 운항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안전 운항을 관제하는 시스템
- 원근거리 통신기술: 선박과 육상 간 끊김 없는 정보 교환을 위한 네트워크 기술
- 안전 보안 기술: 화재, 침수 등의 사고를 초기에 원격으로 대응하고 사이버 보안을 유지하는 기술
글로벌 시장 동향과 주요국의 기술 개발 현황
자율운항선박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세계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규모는 2019년 71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143억 달러로 2배 성장할 전망입니다. 다른 시장 조사에 따르면 더 큰 성장률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특히 2015년 544억 달러였던 자율운항선박 시장이 2030년에는 2,541억 달러(약 330조 원)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율운항선박이 단기간에 급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건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수명 주기도 길기 때문에 정부 정책 지원 없이는 확산이 더딜 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규제, 법률, 보험 등 비기술적 문제들도 해결되어야 합니다.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은 지역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 유럽: 글로벌 해운사가 위치한 유럽에서는 전문 솔루션 기업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르웨이 콩스버그, 영국 롤스로이스 마린, 핀란드 바르질라, 스위스 ABB 등이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완전자율운항 여객선 ‘팔코'(Falco)가 시험운항에 성공했습니다.
- 미국: 군용 자율운항선박 수요가 강한 미국은 주로 스타트업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일본: 2040년까지 완전자율운항을 목표로 ‘일본재단’과 60개 단체가 협력해 ‘MEGURI 2040’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이미 6척의 완전자율운항선박 실증 테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한국: 대형 조선 3사(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가 개별적으로 자율운항선박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정부도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약 1,600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사업(KASS)’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 현황
우리나라는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가 공동으로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지능형 항해 시스템, 기관자동화 시스템, 통신 시스템, 육상 운용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25m급 시험선과 국제 항해가 가능한 실증선에 단계적 실증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HD현대(아비커스): 2022년 8월, HD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가 세계 최초로 2단계(Level 2) 자율운항 솔루션인 ‘하이나스(HiNAS) 2.0’의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광석운반선에 적용해 연료를 15% 절감하고, 탄소 배출량을 10% 줄이는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 삼성중공업: 독자 개발 자율항해 체계인 ‘삼성자율선박(SAS)’을 통해 원격운항과 충돌회피 시스템을 검증했습니다. 2022년에는 국립목포해양대 실습선 ‘세계로’ 호에 SAS를 탑재해 목포-독도 간 950km 해상실증을 완료했습니다.
-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스마트십 솔루션인 ‘DS4(DSME Smartship Solutions)’의 네비게이션 성능 테스트와 기술검증을 완료했으며, 자율운항시험선 ‘단비(DAN-V)’를 통한 단계별 운항시험을 진행 중입니다.
자율운항선박의 미래 전망과 기대 효과
자율운항선박은 해운·조선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양수산부는 자율운항선박이 기존 선박에 비해 물류 흐름을 10% 이상 개선하고, 해양사고를 약 75% 줄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건비 등 운용비용도 20% 이상 감소하고, 관련 기자재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자율운항선박이 가져올 주요 변화와 기대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전성 향상
인적 과실로 인한 해양사고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컴퓨터와 AI는 피로나 주의력 저하 없이 24시간 선박을 모니터링할 수 있어, 특히 악천후나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일관된 안전 운항이 가능합니다.
2. 경제성 향상
인건비 절감, 최적 경로 항해를 통한 연료 효율 증가, 선박 유지보수 비용 감소 등으로 운영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또한 선원 공간이 화물 공간으로 전환되어 화물 적재량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3. 환경 영향 감소
최적의 속도와 항로 계산으로 연료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하며,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비커스의 HiNAS 2.0 적용 사례에서 보듯이 탄소 배출량을 10% 이상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4. 산업 패러다임 변화
자율운항선박의 도입은 조선업의 경쟁 패러다임을 ‘가격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와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자율운항선박 상용화의 과제와 해결책
자율운항선박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여러 과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1. 법적·제도적 장벽
현재의 해상법과 국제 협약은 대부분 유인 선박을 전제로 하고 있어, 자율운항선박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선박을 위한 국제 표준(MASS Code)을 개발 중이며, 이 코드는 2025년 비강제적 코드 채택, 2032년 1월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에 대응하여 2025년 1월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상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자율운항선박법)」을 시행하여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 기술적 과제
완전 자율운항을 위해서는 센서 기술, AI 알고리즘, 통신 기술, 사이버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적 발전이 필요합니다. 특히 극단적인 해상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개발과 사이버 보안 강화는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3. 사회적 수용성
무인 선박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불안감을 해소하고, 선원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자율운항선박이 새로운 직업과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 확산과 함께, 기존 선원의 재교육과 새로운 역할 부여가 중요합니다.
4. 국제 협력
자율운항선박의 글로벌 표준화를 위한 국제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IMO를 통한 국제 표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경쟁력과 미래 전략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지속적인 R&D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한국이 자율운항선박 기술 선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원천기술 개발: 상황인식, 자율항해, 원격관제, 선박 시스템 통합 등 핵심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
- 실증 인프라 구축: 울산 고늘지구에 자율운항선박 성능실증센터를 구축하고, 실제 해상 환경에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확대
- 국제 표준화 주도: IMO의 자율운항선박 국제 표준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한국 기술의 국제 표준화 추진
- 산업 생태계 조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율운항선박 산업 생태계 구축
- 전문인력 양성: 자율운항선박 관련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산학연 협력 강화
전문가들은 한국이 비록 자율운항선박 연구를 선진국에 비해 8년 정도 늦게 시작했지만, 조선 및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4~5년 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 바다의 미래를 열다
자율운항선박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해운·조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인적 오류로 인한 해양사고 감소, 운영 효율성 향상, 환경 영향 최소화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으로 조선·해운업의 미래를 좌우할 자율운항선박의 주도권은 기술 표준화를 선점하는 국가와 기업이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우수한 조선 기술력과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바다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의 비극적 침몰 사건은 인적 오류가 가져올 수 있는 해양 재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기술적 진보가 될 것입니다. 선박이 스스로 항해하는 미래의 바다는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자율운항선박은 언제 상용화될 예정인가요?
A: 완전 자율운항선박(Level 4)의 상용화는 2030년대에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자율운항선박 코드가 2032년 발효될 예정이며, 이후 상용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부분 자율운항선박(Level 2)은 이미 상용화되기 시작했으며, 향후 5-10년 내에 점차 확산될 전망입니다.
Q: 자율운항선박이 등장하면 선원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나요?
A: 자율운항선박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선원의 역할은 줄어들겠지만, 원격 관제사, 자율운항 시스템 운영자, 데이터 분석가 등 새로운 직업이 창출될 것입니다. 기존 선원들은 재교육을 통해 이러한 새로운 역할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Q: 자율운항선박의 안전성은 어떻게 보장되나요?
A: 자율운항선박은 다중 센서 시스템, AI 기반 충돌 회피 알고리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합니다. 또한 국제 표준과 인증 제도를 통해 엄격한 안전 기준을 적용받게 될 것입니다. 초기에는 부분 자율운항 단계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친 후 점진적으로 완전 자율운항 단계로 발전해 나갈 예정입니다.
Q: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A: 시장조사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30년 자율운항선박 시장 규모는 최소 143억 달러에서 최대 2,541억 달러(약 330조 원)로 전망됩니다. 이는 현재 대비 2~5배 성장한 수치로, 자율운항선박 관련 기자재,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포함한 전체 생태계의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Q: 한국의 자율운항선박 기술 수준은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인가요?
A: 한국은 자율운항선박 개발에 다소 늦게 참여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과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빠르게 격차를 좁히고 있습니다. 현재 HD현대(아비커스)는 세계 최초로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을 상용화했으며, 전문가들은 4~5년 내에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이제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혁신입니다. 바다 위의 테슬라로 불리는 자율운항선박이 열어갈 미래를 함께 지켜보며, 한국이 이 분야의 선도국가로 도약하기를 기대해봅니다.